한반도 온난화로 `슈퍼 허리케인` 덮칠수도
60년~120년 주기로 반복되는 대가뭄 2020년에 올 수 있어
봄ㆍ여름은 더욱 길어지고가을ㆍ겨울 더욱 짧아질것



최근 찾은 전종갑 서울대 대기과학과 명예교수 연구실.

책상과 책장에는 기상학 관련 서적과 학회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일성록(日省錄), 측우기에 관한 수많은 서적도 연구실 한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 노교수 얼굴은 여전히 학문과 배움의 열정으로 들떠 있었다. 평생을 과거와 미래 한반도 기상 연구에 바쳐온 백발의 석학은 젊은 교수들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강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전 교수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 중세 문헌에 적힌 기상정보를 현대식 기준으로 재구성해 데이터화하는 데 구슬땀을 흘렸다. 1778년부터 2004년까지 총 227년에 걸친 방대한 분량이다. 고문헌에 잠자고 있던 기상 정보를 현대판 한반도 기상 데이터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1441년 측우기가 발명된 이래 조선왕조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 문헌에 일일강수량 등 기상정보를 상세히 기록해뒀다. 1999년 국보 303호로 지정된 승정원일기에는 왕명 출납을 담당했던 승정원이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승정원일기는 1973년 국보 제153호로 지정된 일성록과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연대기 기능을 담당하는 귀중한 사료다. 두 문헌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수백 년 전 기상 정보가 현대 기상학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전 교수는 거시적인 시간 속에서 한반도 기상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고문헌에 담긴 기후 정보를 통해 한반도 기상 변화 추이를 전망할 수 있죠. 일례로 연구 결과 1700년대에는 6월 하순이면 장마가 왔지만 지금은 8월에 장마가 옵니다. 한반도에서 집중강우 시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을 통해 긴 시간에 걸친 기후변화를 과학적인 데이터로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 봄·여름은 길어지고 가을·겨울 짧아질 것

21세기 한반도 기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전 교수는 "100년 후 기상까지 정확히 예측해낼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낌없이 전망을 풀어놨다. 수백년 전 시간 속에서 살려낸 데이터에 전 지구적 상황 변화와 현대과학의 틀을 더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불가피하다며 운을 뗐다.

"전 지구적으로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증가하면서 지구온난화란 악재는 이제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온난화가 본격화하면 해수면 온도 상승도 불가피합니다. 이로써 대기 중 공기가 수증기에 함유될 수 있는 최대 능력, 즉 최대함수량도 점차 증가하게 됩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공기 속에 수증기가 많이 포함된다는 의미인데요,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예상됩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에게 전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최대함수량이 늘어나니 결국 앞으로 비가 오면 왕창 올 겁니다. 재해기상이 빈발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해지죠. 태풍 강도가 거세질 것이고, 심지어 언젠가는 미국식 슈퍼 허리케인이 한반도에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관건은 우리나라가 재해기상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느냐는 것인데, 매년 되풀이되는 기상이변이 향후 더 심각해진다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겠죠."

겨울에도 초겨울과 늦겨울을 중심으로 눈 대신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전체적인 강수량은 늘겠지만 강수 일수는 줄 것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전 교수는 "일조량이 늘어나 과수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이제 비가 오면 왕창 오는데 그날을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열대지방 해수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태풍 발생 빈도도 많아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태풍이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비도 언제 왕창 내릴지 모르고 태풍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다만 많이 강하게 찾아온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눈도 비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해가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해수면 온도 상승에 따라 폭설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꾸준히 더워지고 습해지겠지만 때에 따라선 추세와 정반대인 기후도 나타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장기적인 추세와 별도로 단기적으로는 큰 변동폭을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올해 예상되는 가뭄도 꾸준한 강우 증가 추세 속에서 일시적인 변동폭 하락 때문인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전 교수는 한반도 사계절이 상당한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봄과 여름은 길어지고 상대적으로 가을과 겨울은 짧아질 것으로 그는 전망한다. 이런 변화는 지구온난화에 기인한다고 그는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개화시기가 매년 앞당겨지는 추세입니다. 기온이 상승하기 때문에 꽃이 일찍 피는 거죠. 봄이 일찍 오면서 겨울은 짧아지겠고 또 여름이 길어지면서 가을은 줄어들 겁니다."

봄은 따뜻해지고 여름은 덥고 습해지며 가을겨울도 예년보다 기온이 날로 상승할 것으로 전 교수는 전망했다. 여름이 더워지고 따뜻한 겨울날이 많아지면서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지난해 봄철 이상저온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했다. 봄은 날로 길어지고 따뜻해질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전 교수는 한반도 사계(四季)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균기온 지속일수, 강수량 등을 기준으로 삼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시점 내지 종점을 규정하자는 것이다.

"계절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에 대한 정의부터 새로워야 합니다. 정확한 온도 기점, 강수량 수치 등을 토대로 규정하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온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가령 여름의 시작을 인간에게 가장 쾌적한 온도인 18도가 지속되는 시점으로 삼는 것이죠. 또 가을은 서늘한 온도를 기준으로, 겨울은 첫서리나 첫눈으로 그 시점을 정하자는 겁니다. 그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기상학계 합의가 우선 도출돼야겠죠."

◆ 한국형 기후예측 모델 개발해야

= 전종갑 교수는 재해 수준인 기상이변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구나 부산 등 눈이 많이 내리지 않던 지역에 폭설이 내리면 모두가 당황해서 절절매는 상황이잖아요. 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급변하는 이상기후로 큰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이어 전 교수는 한국형 기후예측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완벽한 기후 수치를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폭을 좁혀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전병성 전 기상청장이 향후 매년 약 100억원씩, 10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입해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평범한 날씨 기상은 누구나 쉽게 맞힐 수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동폭이 클 때 기상 상황을 맞히는 것이죠. 가령 `내일 비가 제법 내리겠네`라고 판단하고 현재 모델을 통해 300㎜를 예측했는데도 갑자기 800㎜가 내릴 수도 있어요.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이 정도 수치를 정확히 맞히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그 폭을 좁혀나가는 게 관건입니다."

그는 120년을 주기로 한반도를 찾은 대가뭄을 예로 들며 기상이변에 정부가 체계적으로 대비해줄 것을 주문했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을 통해 분석해보니 한반도에는 짧게 잡으면 60년, 길게 잡으면 120년마다 대가뭄이 있었습니다. 1780년대에 한 차례 왔고, 1900년대 초반에도 가뭄이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일각에서는 조선왕조 몰락을 1900년대 초반 대가뭄과도 연계하려는 시각도 있어요. 어쨌든 고문헌 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 대가뭄이 올 가능성이 높지 않나 예측해 봅니다. 물론 대가뭄 예측이 틀릴 수도 있지만 미리 대비해두는 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 기상재해 상상이상으로 커질터…예산 확 늘려야

전 교수는 미국 기상이변을 언급하며 최근 한반도에 빈발하는 악기상을 염려했다.

"미국에는 기상재해가 발생하면 국민총생산 대비 몇 %가 날아갈 정도로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를 야기합니다. 기상재해에 의한 사망자도 연평균 수만 명에 육박하죠.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예산을 기상학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에선 기상재해에 대비하지 못하면 재선에 실패한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기후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대단하죠." 그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한반도를 찾은 한파와 폭설 등이 한반도 기상이변이 심각함을 깨닫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미국 재해기상에 비하면 한반도는 그나마 얌전한 편이었는데 2010년을 기점으로 기상이변이 속출했습니다. 다행인 점은 이런 심각성에 눈을 뜨고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월 기상청은 북극 평균기온이 낮아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온 게 이번 한파와 폭설이 나타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지구온난화의 역설`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북극 지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10도나 높았다. `북극진동`이란 북극에 존재하는 찬 공기의 소용돌이가 수십 일 또는 수십 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말한다. 북극진동 지수가 양일 때는 따뜻해지지만 음일 때는 추워진다. 올겨울은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해 음이 상대적으로 컸다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이에 전종갑 교수는 기상청 분석보다 더 정확하고 세세한 한파와 폭설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2월부터 2월까지 전 세계 기후 데이터를 수합해 체계적인 연구를 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지난겨울 기상자료를 모아서 연구에 들어가자고 얘기해뒀죠. 이번 한파는 굉장히 혹독했죠. 개인적으로도 한파 원인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전 교수는 민간 기상사업자 육성을 통해 기상학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석준 기상청장이 민간 기상산업을 육성하려는 방침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에는 1000개가 넘는 민간 기상사업자가 등록돼 있죠. 성장 기반을 미리 닦아뒀기 때문에 기상산업 발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 혜택은 고스란히 일반인에게 옵니다. 수익을 내는 구조가 가능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아요. 종잣돈(예산)이 없으니 하다 주저앉고, 하다 주저앉고 하는 겁니다." 기상청과 민간 기상사업자 역할이 먼저 분리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 교수는 주장했다.

"기상청은 전국 단위 기상예측에 주목하고, 민간 기상사업자는 해당 지역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는 겁니다. 거시적인 예측을 담당하는 기상청과 달리 민간 기상사업자는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기상 정보를 제공하게 하면 됩니다. 가령 골프장, 낚시터, 건설현장 등 좁은 지역에 집중해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죠. 기상청에서 이렇게 세세한 지역에 대한 기상 정보까지 제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거든요."

■ He is…

△1968년 서울대 기상학과 △1975년 서울대 대학원 기상학과 석사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기상학 박사 △1989년 서울대 대기화학과 교수 △1998년 기상청 올해의 기상인상 선정 △1999년 서울대 대기과학과 학과장 △2006년 한국기상학회 이사 △2011년 서울대 명예교수

출처 : 매경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