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23일 서울 북창동. 장마를 앞두고 습도가 잔뜩 높은 날씨에 40세쯤된 한 젊은이가 이 약국 저 약국을 찾아다니며
수면제를 사모았다.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이 젊은이는 술에 취한 채 밤 11시쯤 송추 공원묘원에 도착했다. 컴컴한 밤중에
산에 오른 그는 아버지 산소에서 또 다시 소주잔을 기울였다. 양쪽 주머니에는 수면제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장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주산 7단으로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날리던 일. 당시 수재들이 들어간다는 선린상고에 입학했던 일. 주경야독 끝에 단국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중반 치과재료 생산업체인 한국슈어프로덕트의 임원을 거쳐 대표가 됐던 일 등이 스쳐갔다.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58), 당시 그는 불과 30대 후반에 외국계회사 대표를 지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노조의 강경투쟁에 질린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1990년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치과용 근관충전재(신경치료 때 가는 관에 주입하는 재료)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해외공장은 생산성이 떨어졌다. 결국 문을 닫았다. 친인척 돈을 모아 무려 35만달러나
투자했는데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이다. 1993년 6월 빈털터리로 귀국한 뒤 자살을 결심하고 아버지 산소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 잠든게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너무 취해 수면제를 꺼낼 새도 없이 곯아떨어진 것이다. 새벽 4시쯤 됐을까. 한기를 느낀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죽을 각오가 돼 있다면 그럴 각오로 다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소극적이던 그의 성격은 180도 달라졌다. 죽음을 각오하니 겁날게 없었다.
친구들 모임에 찾아가 어렵게 5000만원의 종잣돈을 만들어 다시 시작했다. 충북 청주 모충동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에 60평짜리 지하실을 빌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기업은 지금 98개국에 치과용기자재 등을 수출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오송 생명공학단지 내에 있는 본사는 종업원을 위한 축구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탁구장 헬스클럽도 갖추고 있다. 해외대리점은 200여개에 달하고 종업원 200명에 특허등록 33건, 출원
18건, 작년 매출 252억원에 이르는 업체로 성장했다. 주요제품은 치과용 근관충전재,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 인공뼈 등 크게 세
가지다.
오 회장은 “이 중 생분해성 봉합원사는 세계에서
7번째로 상용화했고 근관충전재는 세계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학연 협업을 통해 상용화한 치과용 재료,
치과용기구 등 각종 신제품들이 메타의 성장동력이다.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96% 이상을 수출에서 일궈내고 있다. 공장은 국내와
캄보디아 프놈펜 등에 있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판매법인을 두고 있다.
햇빛 한줌 안드는 지하셋방에서 시작해 호텔급 본사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한 이 회사의 비결은 뭘까.
첫째, 공격적인 마케팅
오
회장은 “그동안 출장간 나라가 약 100개국에 이르며 거리로 환산하면 약 330만마일에 달한다”고 했다. 지구 약 130바퀴에
이르는 것이다. 출장땐 철칙이 있다. 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전시회 때문에 세 번 갔지만 한 번도
코앞의 관광명소 코파카바나 해변을 밟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작년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리비아 이집트 케냐 남아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를 종단하며 시장 개척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 수십개 도시를 다녔다.
둘째, 오픈 이노베이션 활용
오
회장이 전북대에 특강하러 갔을 때 그의 고생담에 감동한 김학용 교수(섬유공학과)가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를 함께 개발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즉석에서 수락해 사업화했다. 수술할 때 쓰이는 이 실은 실밥을 뽑지 않고 나둬도 녹아서 체외로
배출된다. 오 회장은 “지금 우리 회사 매출의 약 56%가 바로 이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이며 41%가 치과용 근관충전재,
나머지는 인공뼈”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자체 연구인력 20명을 두고 있으며 미국 일리노이대 서울대 세라믹기술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충북대병원 등 19곳과 산학연 연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셋째, 다양한 네트워크
그
는 “사업을 위해선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좋은 네트워크를 갖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해 시간을 아껴가며 인맥 구축에 나선다”고
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나 회사에 나온 뒤 7시에 임원회의를 열고 오전 10시까지 회사 일을 처리한 뒤 대외활동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협회 부회장, 한빛회 회장(이달의 무역인상 수상기업인 모임), 코스닥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그의 비전은 ‘인류의 건강한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첨단보건의료 전문기업’이다. 이를 위해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업화할 제품을 선정하고 공동으로 연구개발하며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네째, 적극적인 사고방식
메타바이오메드에 들어서면 벽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기둥이 있으면 자르고 산이 있으면 구멍을 뚫고 바다가 있으면 메우겠다.’ ‘실행하면서 생각하고 고쳐가면서 완성하자.’
이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자는 것이다. 이게 오 회장의 스타일이다. 그가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소극적이고 겁이 많았다. 오 회장은 “자살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자 모든 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
가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를 개발 중이던 2000년대 중반 독일 뒤셀도르프 의료기기전시회인 메디카에 출품해 독일 비브라운이라는
업체로부터 주문을 따낸 것도 이런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다. 완제품이 아직 생산되기 전이었는데 샘플만 들고 수주한 것이다.
이런 사고는 아프리카 시장을 보는 눈에서도 나타난다. 아프리카는 못 사는 나라여서 굳이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아프리카에는 약 16억명이 살고 이 중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5%는 잘산다”며 “이 5%가
무려 8000만명에 이르며 이는 한국 부유층의 몇 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든지
유망시장이 될 수 있고 이는 중남미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가 여러 기관이나 모임 회장이나 임원을 맡는 것도 이런 성격이 반영된 것이다. 그는 ‘내 사전에 은퇴란 말은 없다’고 못 박는다.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이 메타바이오메드호의 항해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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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져: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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